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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학을 비롯한 학문 일반이 직면한 문제의 본질은 ‘사고’하지 않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고’라는 것이 논쟁성과 확장성 그리고 창의성을 차단하는 정형화된 틀 속에 갇혀 버렸다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부분을 이해하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데카르트식의 기계론적 환원주의(mechanistic reductionism)에 탐닉함으로써 부분과 전체의 유기적 통일성에 기초한 시스템적 사고 또는 맥락적 사고(contextual thinking)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국학은 한국과 관련하여 일어난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나 다양한 제도들의 단순한 집적(集積)이 아니다. 역사적 세계를 관통하여 줄기차게 이어져 온 우리 고유의 ‘한’사상과 정신문화를 한국학 콘텐츠가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상고시대에 고도의 문명을 이룩했음에도 세계 문명사에서 누락된 이유를 곱씹어보는 자기성찰의 한국학이 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학이 직면한 최대의 딜레마는 우리 역사의 뿌리이자 한국 사상 및 문화의 원형을 담고 있는 우리 상고사(上古史: 삼국정립 이전 광의의 고대사)에 대한 인식이 공유되지 못함으로 인해 한국학이 뿌리 없는 꽃꽂이 식물과도 같이 생명력을 상실하고 한국학 콘텐츠의 심대한 빈곤과 불균형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오늘날의 한류 현상은 동아시아 최대의 정신문화 수출국이었던 코리아의 면모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서양이 갈망하는 한국산(産) 정신문화는 인류 보편의 가치 개념들을 포괄하고 있는 우리 고유의 ‘한’사상이다. ‘한’사상의 ‘자기조화(self-consistency)’는 무경계(no boundary)라는 본질적 특성에서 오는 것이다. ‘한’의 전 지구적 확장 가능성 및 침투 가능성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일즉삼·삼즉일’이라는 ‘생명의 공식’으로 표상되는 우리 고유의 ‘한’사상―동학에까지 면면히 그 맥이 이어진―이야말로 남과 북, 나아가 인류가 하나 되게 하는 ‘마스터 알고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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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연구에 있어 가장 큰 딜레마는 상고로부터 중세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많은 역사서들이 외적의 강압과 내부의 사대주의자들, 그리고 정권 탈취 세력의 기만책과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의해 산실(散失)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역사서뿐만 아니라 예언서를 포함한 다양한 서적에서 우리 상고사가 언급되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한 민족 집단에 귀속되는 역사가 아니라 인류 문명의 원형을 간직한,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인류의 뿌리 역사이기 때문이다. 웅혼한 기상과 장대한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수천 년의 우리 상고사 속에는 이 우주를 관통하는 ‘의식(意識)의 대운하’를 건설할 비옥한 철학적·사상적·정신문화적 토양이 갖추어져 있다. 한국학 콘텐츠에 우리 상고사를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다. 우주 가을의 초입에서 환국(桓國)으로의 원시반본(原始返本)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한’으로의 사상적 원시반본을 통하여 인류가 영원한 생명을 체득하기 위한 것이다.

환국과 배달국의 역사적 실재에 대해서는 1512년에 발행된 조선 ‘중종임신간본(中宗壬申刊本)’ 『삼국유사』에도 명기되어 있다. 제1 고조선 왕검조선조에는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옛날 환국에 높은 서자 벼슬을 하는 환웅이 있었고(昔有桓國庶子桓雄)” 마지막 환웅 대에 단군이 나와 조선을 개국했다는 내용을 전하였다. 또한 단군조선시대의 천문 현상을 컴퓨터 합성기법을 이용해 역으로 추적하여 시각화함으로써 『환단고기』의 내용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요녕(遼寧) 지역에서 대규모로 출토된 동이족의 홍산문화 유적은 환국·배달국·단군조선의 역사적 실재와 그 전개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중국이 그들의 시조로 받드는 삼황오제가 모두 하나의 뿌리 즉 동이(東夷)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고대 중국 왕조의 시원을 짐작하게 한다. 또 일본 왕가(王家)의 즉위식에서 지금도 천부인(天符印) 3종(청동검·청동거울·곡옥)을 물려받음으로써 왕권 계승을 공식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본 왕가의 시원을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