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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치열하게 부딪히고 깨지는 와중에도 절대 잡은 손을 놓지 않는 소녀들. 그렇게 더 용감하고 강력해져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만드는 소녀들. 그런 무시무시한 여자애들의 이야기를 어찌 감히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나란 사람은 이런 멋진 영화를 무려 10여 년이나 모른 척하며 살아왔단 말인가…….
— p.24

생각해보면 어린이들의 허세는 정말 대담하고 진지하다. 그래서 때론 틀린 표현이 있어도 잡아내기 어렵고, 대놓고 웃기엔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확실히 어린이들은 새말을 익히는 과정에서 필히 겪을 수밖에 없는 실수나 실패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두려울지언정 과감히 시도해보고 틀리면 수정해나갈 수 있는 엄청난 용기가 있는 것도 같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그렇게 쉽고 빠르게 새로운 말들을 익히고, 끝내 자기 것으로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 p.31

어린 시절, 작은 놀이터와 화단이 꽉꽉 들어찬 아늑한 대단지 아파트에 살았다. 그땐 하루 일과가 얼마나 단순하고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아침밥을 먹으면 곧바로 자전거를 끌고 나가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고, 다시 집에 와 점심밥을 먹고는 금세 놀이터로 달려가 모래와 땀으로 잔뜩 치장하고 종일 신나게 뛰어놀았다. 그리고 해 질 녘이면 근처 폭신한 풀밭에 드러누워 이름 모를 풀벌레를 구경하다 저녁밥을 먹으러 집에 들어갔다.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꽉 찬 하루를 보내던 시절이었다.
— p.35

노래방은 정말 마법의 방이었다. 노래방에 가면 좋았던 기분은 더 좋아지고 안 좋았던 기분도 끝내 좋아졌다. 그래서 매번 끝날 시간이 다가오면 사장님을 겁박한 채 제발 서비스 시간을 더 달라며 읍소와 협박을 동시에 일삼곤 했다.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부끄러움이 다 뭔가. 그 마법을 조금이라도 연장할 수 있다면, 늘어난 시간 동안 사장님의 신청곡 메들리도 기꺼이 이어갈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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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미스터리다. 입에는 최고의 기쁨을 선사하면서 왜 몸속에만 들어가면 최악의 사태를 일으키는 걸까. 신은 왜 내게 빵을 즐길 수 없는 몸을 주시고, 왜 빵 맛은 골고루 잘도 알게 하셨을까. 매혹과 혼돈의 빵이여. 넌 대체 내 삶에 어떤 은유가 되려고 온 거니.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요망한 빵.
— p.82

아이들이야말로 여름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즐길 줄 알았다. 여름이 오면 아이들은 땀이 나든 말든 가벼운 옷차림을 날개 삼아 어디든 자유롭게 누비고 다녔다. 더위를 핑계 삼아 시원하고 달콤한 간식들을 양껏 먹을 줄도 알았다. 푹푹 찌는 날이면 거침없이 물가로 달려가 흠뻑 젖도록 노는 패기가 있었고, 비가 오는 꿉꿉한 날이면 기꺼이 상념에 젖어 고요한 시간을 보내는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아이 들은 여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즐길 줄 알았다. 여름의 주인은 바로 아이들이었다.
— p.89

지금도 종종 아담문방구 아저씨를 생각한다.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많아지면서부터는 더더욱 아저씨 생각이 많이 난다. 그 시절, 작고 연약한 어린 마음들이 다치지 않도록 늘 세심하게 배려하고 다정하게 격려해주던 아저씨의 따뜻한 눈빛과 미소가 여전히 눈에 선하다. 그때의 기억들이 다자란 내게도 여전히 깊은 용기와 힘이 되어준다.
— p.124

어쩌면 내가 정말로 원한 건 단순히 특정 물건들이 아니라 그 물건들이 놓인,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고, 각종 경험을 직접 해볼 수 있는 공간 자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곳 특유의 생생한 활기와 넘치는 에너지를 다시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그 들썩들썩한 분위기와 따뜻한 조명과 온도, 습도…… 같은 것들이 나는 못 견디게 그리웠다.
— p.156

비통하고도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큰 슬픔과 고통을 말하기 위해, 삶의 다양한 조각들을 그러모아 들여다보고 재조합해 새로운 언어를 만든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먼저 가버린 이를 이해하고, 기억하고, 나누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지극히 내밀한 손길로 상실의 자리를 어루만지는 진실한 애도의 작업이었다.
— p.171

조카와 함께한 7년 동안, 나는 한 인간이 도약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온전히 목격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값진 경험을 했다. 아이의 도전은 곧 나의 도전이었고, 아이의 성취는 바로 나의 성취가 되었다. 아이가 겪는 어떤 사소한 변화도 어느 것 하나 놀랍고 새롭고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 p.177

나는 이제 그냥 걷기로 했다. 계속 헷갈리고 오락가락하면서. 쉼 없이 의심하고 흔들리면서.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면 끝내 어딘가에는 도착해 있겠지. 그러다 보면 마침내 누군가는 되어 있겠지. 사실 꼭 어딘가에 도착하지 않아도, 반드시 누군가가 되지 않아도 좋다. 걷는 동안 행복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멋진 삶일 테니까. — p.197